제6장
내가 찾아가지 않으니 그가 알아서 돌아왔다.
아무래도 유천우가 압박을 넣은 모양이다.
고예린이 멈칫하는 걸 본 강 아주머니가 다시 기쁜 듯 말했다. “방금 위층 침구 교체하러 올라갔는데, 도련님께서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가시더라고요. 오늘 밤은 안 가실 모양이에요.”
남편이 한번 돌아왔다고 집안의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그녀를 대신해 기뻐한다. 마치 총애를 잃은 후궁이 마침내 황제의 행차를 맞이한 것 같다고, 고예린은 속으로 자조했다.
신발을 갈아 신은 고예린이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럼 올라가서 한번 볼게요.”
방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서자, 마침 유지훈이 욕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고예린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왔네! 잠깐만 기다려, 나 먼저 씻고 올게.”
유지훈이 혐오스럽다는 듯 말했다. “고예린, 넌 다른 생각은 좀 할 수 없나?”
고예린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집에 와서 먼저 씻는 게 뭐가 이상해?”
“그리고 내가 당신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안 들면, 그때야말로 당신이 울어야 할걸.”
유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십여 분 후, 고예린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유지훈은 침대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 금테 안경을 또 쓰고 있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다가간 고예린은 바짓가랑이를 살짝 쥔 채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려 유지훈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단정하고 고아한 얼굴이 위를 향했다. 고예린은 그의 눈빛을 못 본 척하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의 잠옷 허리띠를 풀어헤쳤다.
오른손에 책을 든 채, 유지훈은 표정 없는 얼굴로 고예린을 보며 명령했다. “내려가.”
고예린은 그의 옷을 벗기려던 동작을 멈추고 그를 보며 물었다. “유지훈, 당신 혹시 발기부전이야? 진짜 그런 거면 내가 병원에 같이 가 줄게.”
유지훈이 차가운 눈빛을 쏘아보내자 고예린은 눈치껏 말했다. “이 얘기는 하기 싫어? 알았어, 알았어. 그럼 다른 진지한 얘기 좀 하자.”
유지훈이 손에 든 책을 내려놓고 드물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 정리 끝났나? 이혼하기로?”
……고예린이 말했다. “좋은 생각 좀 하면 안 돼?”
말하며 엉덩이를 앞으로 조금 더 움직였다.
유지훈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고예린은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쌌다. “유성 그룹 법률 대리 건 말인데, 그거 혹시……”
고예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지훈이 말을 끊었다. “꿈도 꾸지 마.”
“그러지 마!” 고예린이 말했다. “다른 로펌에 대리를 맡기나 조양에 맡기나 무슨 차이가 있어? 조건은 협상하면 되잖아!”
유지훈이 고예린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어떻게 협상하지? 성 상납? 고예린, 너 같은 수준이면 돈을 얹어줘도 사양이야. 내가 돈을 낼 거란 생각은 버려.”
고예린은 아름다웠다.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워서, 한번 본 사람은 밤낮으로 그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 하찮은 속셈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훤히 보였다.
유지훈이 쌀쌀맞게 굴자, 고예린은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고 손가락으로 그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아니면 대리 비용은 내가 낼 테니까, 당신은 나한테 애나 하나 낳아주면 어때?”
유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낳은 아들한테 내 재산을 상속시키려고? 아주 좋은 꿈을 꾸는군.”
결혼 2년 동안 고예린은 그를 볼 때마다 아이를 낳자는 이야기만 했다. 그 때문에 유지훈은 자신이 그녀의 출산 도구처럼 느껴졌다.
고예린이 피식 웃었다. “아들일 줄 어떻게 알아? 딸이면 어떡해? 아니면 내가 각서라도 써줄까? 내 아들은 당신 재산 상속 안 받는다고.”
고예린이 그렇게 말하자 유지훈은 더욱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내려가.”
고예린은 두 손을 유지훈의 어깨에 올렸다. 그의 눈빛은 몹시 차가웠지만, 이목구비는 지극히 아름다웠다.
빈틈없이 진지한 모습은 그에게 키스하고 싶고, 정복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그녀는 내려가기는커녕,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
유지훈이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밀어내려 했지만, 고예린의 부드러운 혀가 파고들었다. 유지훈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결국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
향긋한 내음이 두 사람의 입술과 치아 사이로 퍼져나가며 방 안의 분위기는 야릇해졌다.
잠옷이 어깨에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고예린의 새하얀 피부와 봉긋한 가슴은 한 폭의 유화 같았고, 유지훈과의 몸은 점점 더 밀착되었다.
일도, 스캔들도, 다른 어떤 것도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른손이 고예린의 등을 타고 위로 올라갈 때, 유지훈이 옆에 던져 둔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휴대폰 진동 소리에 유지훈은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고예린을 놓고 몸을 돌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김명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지훈이 말했다. “자네가 먼저 사람 데리러 가. 나도 지금 갈 테니.”
유지훈이 전화를 끊고 떠나려 하자, 고예린이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유지훈, 이건 너무 비겁하잖아!”
어떻게 일을 반쯤 하다가 빼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정말 최악이었다.
고예린의 손을 떼어내며 유지훈이 말했다. “장난 좀 쳐줬더니, 진심인 줄 알았나.”
김명재의 전화가 때맞춰 오지 않았다면, 오늘 밤 그는 정말 자제력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고예린의 뜻대로 되었다면, 그건 함정에 빠지는 수준이 아니라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우물에 빠지는 꼴이었다.
유지훈이 떠나자 고예린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곧장 주이안에게 전화해 바로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 잡은 고기가 날아갔다는 고예린의 말을 들은 주이안이 의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그 정도까지 했는데 유지훈이 꿈쩍도 안 했다고? 진짜 발기부전 아냐?”
고예린이 말했다. “열에 아홉은 날 엿 먹이려는 거겠지.”
주이안이 말했다. “그냥 한번 즐겁게 해주면 그만인데. 나중에 진짜 이혼하면 애를 책임질 것도 아니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나한테 너 같은 아내가 있으면 매일 침대에서 못 내려오게 할 텐데.”
주이안의 능글맞은 말은 마치 그녀가 진짜 남자인 것처럼 들렸다.
기가 막힌 건, 그녀의 그 건들거리는 모습에 꽤 많은 여자들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이런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이안은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고예린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예린아, 너희 남편 진짜 좀 심했다.”
주이안이 건넨 휴대폰을 받아 든 고예린의 얼굴도 순간 싸늘하게 굳었다.
남들은 공유 자전거, 공유 보조배터리라는데, 그녀에게는 공유 남편이 된 셈이었다.
밖에서 흥청망청 노는 건 그렇다 쳐도, 자신과 있을 땐 저렇게 쌀쌀맞게 대하다니. 유지훈은 그녀를 너무 존중하지 않는 것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도 너무 심했다.
쾅! 고예린은 술잔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테이블에 엎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갑자기 몇몇 여자들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어머! 이게 누구야, 고예린 씨 아니신가?”
“늦은 밤에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술로 시름을 달래는 중?”
